2006년 초, 권용만이 밤섬해적단이라는 새 밴드를 만들었으니 합주에 나오라고 제안했다. 홍대입구역 근처의 '코랄'이라는 합주실이었다. 박정근이 보컬, 베이스가 나, 드럼 권용만이었는데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형편없는 첫 합주를 했다. 보컬이 첫날에 그만두는 바람에 두 번째 합주에는 다른 친구를 데려와서 보컬을 시켰으나, 갑자기 '유재하가 좋다' 며 나가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2인조가 되어버렸다.
멤버는 처음엔 둘이었지만 점점 늘어났다. 밴드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흔했기 때문에 멤버를 구하기 쉬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 한 곡도 제대로 만들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합주를 전부 녹음해서 적당히 잘라 제목을 붙인 뒤 그게 한 곡이라고 쳐서 음원들을 만들었다. 어느 날은 찬송가로 곡을 쓰자고 모였는데 처음 보는 기타리스트 두 명이 있었다. 나는 집에 있던 찬송가집을 가져와 아무 데나 펼쳐 읽으며 소리질렀고, 나중에 권용만이 'I don't like Jesus but Jesus likes me'라는 앨범으로 발매했다.
여름에 박정근이 스컹크헬에서 공연을 기획했다. 겨우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는데 모아 놓은 세뱃돈으로 겁도 없이 공연장을 대관했다. 그때 멤버는 김간지, 이지원, 나, 권용만이었으며 김간지는 원래 드러머였는데 드럼이 지겹다면서 베이스로 아무렇게나 연주했다. 권용만은 '아무거나 연주하고 제목 100개를 만들어서 공연하자'며 제안했고,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제목 100개를 커다란 종이에 매직으로 적고 무대에 붙여놨다.
(좌측부터) 이지원, 나, 김간지, 권용만
나는 창피해서 스키 마스크를 썼다.
이 첫 공연은 2006년 5월 7일이었고 스컹크헬 비주류 밴드들이 주 라인업이었다. 카우치 사건으로 욕을 많이 먹긴 했어도 여전히 홍대 펑크씬의 전성기였다. 지금과는 달리 어린 펑크들이 많았고, 다들 멋을 부릴 줄 알았다. 닭머리를 했거나 가죽자켓에 찡을 박는다거나, 스타킹을 찢어 신는다거나, 정성스럽게 누더기로 만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생김새가 무서웠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집에 일찍 가려고 했지만 의외로 착한 사람들이어서 친해질 수 있었다.
2006년 스컹크헬 공연 포스터.
펑크씬의 어린 친구들 몇 명이 신촌 노고산동의 투룸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곳을 '신촌집'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월세를 내는 사람은 3-4명이었지만 누구나 술 먹고 자고 갈 수 있는 곳이었어서 언제 가도 늘 10명쯤은 술 먹고 있거나 자고 있었다. 나처럼 평범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참 다양하고 수상한 젊은이들이 이 곳을 오고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디서 알고 왔는지 환경주의자, 페미니스트 친구들도 있었고, 아나키즘을 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비거니즘을 실천한다는 친구도 여기서 처음 봤다. 이곳에 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어렸고 딱히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대학생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펑크 아나키스트'에 2006년 신촌집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2006년 겨울 신촌집 사진 몇 장. 보다시피 난장판이다.
권용만이 여름에 군대를 갔기 때문에 밴드는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신촌집에 자주 가서 놀았다. (권용만은 군대 휴가를 나와서 신촌집에 들렀는데, 만취한 채로 박근혜 욕을 하면서 행거를 부숴버린 뒤로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신촌집에 자주 놀러오는 친구들을 느슨하게 '영펑쓰'라고 불렀는데, 이 중 남자들 대부분의 고민은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절반 정도는 결국 군대에 다녀왔고 절반은 외국으로 가버렸다.
나는 달리 방법이 없어 군대를 가야 했기 때문에 입대를 몇 달 앞두고서는 거의 매일 취해있거나 숙취에 시달렸다. 그동안 만든 곡들을 모아서 동아리 방 컴퓨터로 데모 CD를 제작하려고 했는데 항상 취해 있다 보니 결국 제작을 못 했다. 데모를 만든다 하더라도 배급을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데모는 2011년에서야 3집으로 발매할 수 있었다. 신촌집은 2009년-2010년 쯤에 주인이 바뀌어서 평범한 가정집으로 변했고, 스컹크헬도 그 즈음에 문을 닫았다.
2006년 여름에 작업한 '칼바람'과 '임을 위한 행진곡'. 2011년에 앨범 '맞불놀이'로 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