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수능을 치르고 이듬해에 대학에 들어갔다. 예비 입학생 첫 모임의 술자리 2차로 간 노래방에서 꽤 취해서 크라잉넛 노래를 불렀는데 덩치 큰 선배가 다가와서 자기가 홍대에서 인디밴드를 하고 있다고 말을 걸었다. 그는 훗날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박종윤이었고, 그때 이미 '그들이 기획한' 이라는 밴드로 데뷔한 상태였다.
나도 원맨밴드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둘 다 이미 취해 있었고 반신반의하며 서로 허풍을 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외모가 인디밴드처럼 생기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밴드가 원래 외모와는 상관 없다보니 고만고만하게 생긴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1학년 내내 학생회 활동에 꽤 열심히 참여했기 때문에 학년 대표였던 박종윤과는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웹진 가슴'의 폐허 인터뷰에 음악이 별로라고 악플을 단 사람이었다.
학생회 행사에는 학교 본관을 점거한다든지, 데모를 나간다든지 하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되도록 참여하려고 했지만, 옛날부터 내려온 NL 운동권의 집단주의 때문인지 이상한 선배들도 있었고 견딜 수 없는 문화도 많았다. 그 중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은 단체로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춰야 하는 것과 술 마실 때 노래를 시키는 등 술자리 장기자랑을 하는 문화였는데 특히 후자가 끔찍하게 싫어서 결국 나중에는 이런 것을 안 시키는 모임인 영화 동아리에 가게 되었다.
이 해에는 음악 작업은 별로 하지 않았고, 술 마시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노느라 바빴다. 직접 공연을 보러 다니며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박정근이라는 수수께끼의 고등학생이 만든 '비싼트로피'라는 인디 레이블 웹사이트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곳은 사실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한 커뮤니티에 가까웠고, 밀림을 통해 발매한 디지털 앨범이 대부분이었다. 해외의 펑크/메탈이 주류였고, 펑크라면 크라잉 넛과 섹스 피스톨스밖에 몰랐던 나도 여기서 네이팜 데스Napalm Death, 애널 컨트Anal Cunt, 마이너 쓰렛Minor Threat 등을 알게 되었다.
다들 이유없이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장난스러운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진지하게 음원 링크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권용만이 'Katatony Ahn카타토니 안', 'Zergillica 저질리카' 'MP3head' 등 여러 번 이름을 바꿔가면서 올린 곡들이 주목을 받았다. 지금 기준으로는 시끄럽기만 하지만 어떤 곡들의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는 천재적이었고 특히 가사가 뛰어났다. 놀림감을 만드는 데에 소질이 있어서 온갖 것들을 놀려먹었고 폐허의 '길닦음'도 놀려먹는다고 '밑닦음' 이라는 앨범을 만들었는데 너무 웃겨서 화도 낼 수 없었다.
어느 여름날, 권용만과 메신저로 이야기하다 술이나 한잔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가 자취하고 있던 신촌의 '모기장'이라는 바에서 다른 친구와 셋이 만난 것이 첫 대면이었다. 그 어색한 자리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 밴드를 결성해서 앨범을 내기로 하고, 권용만의 옥탑방에 가서 아무렇게나 기타를 치고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펼쳐 빨리 읽는 것을 녹음했다. 밴드 이름은 '재건' 이었는데 어머니가 언젠가 내게 '폐허'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그런 부정적인 이름 말고 긍정적인 이름으로 활동해라. '재건'이라든지"라는 말을 했던 일화에서 따 왔다.
몇 달 뒤 이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살롱 바다비의 평일 즉흥음악 공연 '불가사리'에서 무대에 올라갈 기회가 생겼었다. 권용만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처음 보는 병약하게 생긴 동년배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공연장에 있던 아무 책과 몰몬경1)을 아무데나 펴서 빠르게 읽는 것이 공연의 요지였다. 사장님은 무대 뒷편의 소파에 누워 내내 자고 있었고 우리의 공연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같이 공연한 있다itta의 음악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서 그가 하나하나 그려서 직접 제작한 데모 CD도 사서 꽤 열심히 들었지만 언젠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권용만도 이것이 첫 공연이었다.2)
1)당시 권용만의 집 근처에 신촌 몰몬교회가 있는데 그곳에서 주워온 것으로 생각된다.
2)'불가사리'의 주최자인 사토 유키에는 당시 강제출국을 당한 상태여서 이 자리에 없었다. 우리는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무대에 올라갔는데 공연 정보에는 가장 잘 알려진 'Katatony Ahn' 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노이즈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진상태, 홍철기, 최준용씨도 이 공연을 같이 했다는데 본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아마 우리 차례가 끝나고 부끄러워서 다 같이 도망나왔던 것 같다. http://www.bulgasari.com/new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