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홍대역 부근에 위치한 M레코드에서 앨범을 정식 발매하기로 구두계약을 했다. 앨범을 내준다고 하니 기뻤지만 진짜로 좋아서 내주는건지 아직은 긴가민가 했고 사운드에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녹음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재녹음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믹싱도 엉망이었으니 적어도 마스터링은 해야 되었을 텐데 마스터링조차 한 기억이 없다.
2002년 여름, 홍대역 부근에 위치한 M레코드에서 앨범을 정식 발매하기로 구두계약을 했다. 앨범을 내준다고 하니 기뻤지만 진짜로 좋아서 내주는건지 아직은 긴가민가 했고 사운드에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녹음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재녹음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믹싱도 엉망이었으니 적어도 마스터링은 해야 되었을 텐데 마스터링조차 한 기억이 없다.
단촐한 디자인을 사용해야 사운드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C사장의 의견대로 고퀄리티의 십자 디지팩을 사용했다. 커버 내부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전면의 사진이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졌다. 200장 한정으로 일일이 핸드 넘버링을 달았는데, 넘버링 인증샷이 여러 건 올라오는 등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C사장은 레이블 오너 이전에 음반 컬렉터였고, 아마 컬렉터끼리는 서로 원하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발매가 이루어진 건 그 해 늦가을 즈음이었고, C사장이 Atmospheric Raw Black Metal이라는 장르로 소개하여 상아레코드, 바이하드, 향뮤직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했다. 나는 이 장르에 대해 모르고 있었지만 썩 근사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말하자면 음질은 나쁘지만 분위기는 좋은 블랙메탈이라는 뜻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법 고심해서 정한 장르 이름이다.
C사장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예의를 표하는 방식에서 서로 차이가 났다. 대화가 종종 매끄럽지 못하게 끝났고 언젠가는 내가 새해 인사를 하지 않아서 무척 섭섭해했다. 나는 '새해 인사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라고 이야기했고 그 뒤로는 아마 서로 멋적었는지 연락할 일이 별로 없었다. 새해 인사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어려서 그런 것도 몰랐고 사실 지금도 새해 인사는 잘 안 하는 편이다.
발매 얼마 뒤 <핫뮤직>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익스트림 메탈 전문이었던 A기자와 서교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다소 너저분했지만 아늑하게 느껴졌으며 왜인지 리믹스라는 과일소주 술병이 많이 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인터뷰때 혼나거나 하면 어쩌지 하고 내심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A기자는 매우 진지한 사람이었고 오히려 내 쪽에서 까다롭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쨌든 음악에 관해 그렇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귀담아 들어주는 어른은 처음이어서 신기했고 처음으로 매체에 인터뷰가 실려서 기뻤지만 부모님은 반신반의하며 약간 걱정스러워했다.
몇 주 뒤 발간된 <핫뮤직> 2003년 1월호를 중학교 졸업 직전 학교에 가져가 자랑했다.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약간 괴짜 취급을 받았었기 때문에 어차피 특이한 녀석이 특이한 일을 했구나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앨범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나를 사물놀이부라는 이유로 예뻐했던 개량한복 차림의 담임선생님이었는데, 발매한 CD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점심시간 방송에 틀으라고 지시했고, 음악이 점심 방송으로 잠깐 나오다 금세 끊겼는데 가엾은 방송부원이 CD가 고장난 줄 알고 놀란 나머지 꺼버린 것이었다.
2002년부터는 홍대의 와스프라는 공연장에 자주 가면서 처음으로 로컬 음악 씬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주말마다 데스파티라는 기획 공연을 했는데 닥썰러지Doxology, 다크 앰비션Dark Ambition, 사혼Sahon 등의 메탈 밴드들이 자주 나왔었고, 아직 유명하지 않았던 바세린Vassline도 본 기억이 있다. 공연 뒷풀이에도 몇 번인가 따라가서 맥주도 조금씩 얻어먹곤 했는데 밴드 멤버들이 젓가락으로 블라스트 드럼을 흉내내고 그로울링을 하면서 노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계속 공연을 보러 다니며 씬의 일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한국 메탈 밴드들의 문화는 너무나 수직적이었고 '메탈을 하면 일반인으로서의 삶은 버리는 것' 운운의 험악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한 밴드의 멤버는 공연을 보러 온 어떤 아이한테 사소한 일로 혼쭐을 내주겠다고 화를 내서, 그곳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 모두가 지레 겁먹고 그 뒤로는 공연장에 가지 않았다.
아무튼 이 해에는 공연을 직접 보러 다녔기 때문인지 한국 메탈 밴드들의 음악도 많이 찾아 들었다. 데스파티의 밴드들과 홀리마쉬Holy Marsh, 새드레전드, 마귀Magwi, 도깨비, 니플하임Niflheim 등을 좋아했다. 그 중 마귀를 특히 좋아해서 여름 수련회 장기자랑 때 시디를 가져가 아무 트랙이나 틀어달라 하고 전교생 앞에서 아무렇게나 그로울링을 했었다. 밴드와 공연을 진지하게 하고 싶었지만 메탈씬은 험악했으며 아직은 같이 할만한 친구도 없었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